[인물]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 3 판 )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Elsa Schiaparelli suit with leather buttons, Fall 1936. Via the collection of The Museum at FIT.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로 1920~1954년 파리의 패션계에서 활약했다. 유럽에서는 샤넬의 경쟁자로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안티 패션'의 형태로 창조되었다. 들로네이처럼 스캡 역시 순수 예술가였다.
스키아파렐리는 예쁘장하고 부드러운 스타일과 정반대의 모델들을 세웠다. 옅은 색조의 나풀거리는 시폰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평범한 여성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준 셈. 보라색, 청록색, 분홍색 트위드(tweed)를 소재로 한 재킷은 어깨의 윤곽이 뚜렷하고 몸에 꼭 맞는 핏이었다. 이 디자이너의 주요 공로 중 하나는 어깨를 확대시킨 것인데, 어깨심을 사용해 만든 최초의 패션이었다. 1932년 보그지에 이 패션이 처음 실리고, 미국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짧은 재킷은 갈색이나 검은색 울을 소재로 한 드레스와 함께 그 당시 가장 유행하는 패션이 되었다.
적갈색과 담록색, 짙은 적자색과 남홍색 혹은 청록색을 조합하거나 스포티하며 대담한 악센트 컬러, 기발한 버튼 등 경계 없는 참신함을 보여주며 디자인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남극적이며 강렬한 색채 중에서 '쇼킹 핑크(Shocking Pink)'가 유명하다. 관습적이지 않은 재료를 써 엘리트와 전통적 관습을 파괴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서열에 대한 도전뿐만 아니라 20세기 초기에 파리지엔의 엘리트적 문화의 인습과 전통에 대한 질문을 한 셈이다. 스키아파렐리의 작품은 컬러커필드와 잔드라 로즈를 포함한 후세 디자이너가 1980년대 초에 신초현실주의를 재건하는 데 촉매제가 됐다.
스키아파렐리를 필두로 고급 의상실도 캐주얼 웨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스키아파렐리는 앙티브에서 처음으로 손으로 짠 니트 수영복을 선보였다. (스키아파렐리는 입고 있던 수제 스웨터로 재능을 인정받아 패션계에 들어간 바 있다.)
예술가들과의 협업
Desk suit, Salvador Dali - Duchamp, Elsa Schiaparelli 1937
1936년 살바도르 달리와 협업해 '책상 슈트'를 제작했다. 손잡이를 버튼으로 한 서랍 같은 강한 시각적 부조물이 있는 진실과 거짓의 '포켓시리즈'로 발전시켰다.
Elsa Schiaparelli Glass Cape: made from rhodophane, a transparent plastic related to cellophane- photo André Durst for Harper's Bazaar, February 1935
1930년대 스키아파렐리는 여러 신소재들, 그 중에서도 특히 '트리바크(Treebark)'라 불리는 오글오글하게 잔주름이 진 실크 를 가지고 갖가지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1935년에는 오늘날 셀로판의 원형이 되었던 '유리' 드레스를 만들어내 신데렐라 슬리퍼를 신어 마무리했다.
1943년에는 셀로판, 벨루어, 유리섬유가 그녀의 컬렉션을 지배하게 됐다. 보그는 "천이 유리의 투명함으로 깨질 것 같지만 유리창 같이 부서지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눈물드레스(Tear Dress)의 에로틱 본성은 그녀가 살바도르 달리와 협업한 눈물과 입술로 덮여진 천을 제작하는 예를 들 수 있다. 이 일루션은 실제 천에 입체적 반응을 초대하는 시각적 판타지를 창조하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그녀는 유머와 도발의 요소, 초현실주의와 예술을 융합한다.
양초모자(Mutton Chop Hat)
1938년, 신발모자(Shoe Hat)
1937년, 달리의 영향을 받은 바닷가재와 흰 오간디에 파슬리 천
콕토
베르테스 반 돈존
자코메티
크리찬 버나르
인용
장 콕토 "패션은 매우 젊게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
1954년 스키아파렐리 "가장 어렵고 만족스럽지 않은 예술이고 그러기에 드레스는 태어나자마자 과거의 것이 된다."

